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금사동의 유래

금사동의 유래

금사동은 조선시대 동상면(東上面) 지역인데, 이때까지 금사(錦絲)라는 행정동명은 없었는데, 일제 초기 금천(錦川)마을과 사천(沙川)마을의 두 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두 마을의 첫글자를 합하여 동명이 되었다. 회동동(回東洞)은 회천(回川)마을과 동대(東臺)마을로 구성되어 역시 두 마을의 첫글자를 합하여 동명이 된 것이다.

1937년 편찬한 《동래군지》에 의하면 동래읍 금사리(錦絲里)와 회동리(回東里)를 합한 지역이다. 법정동(法定洞)으로 금사동과 회동동은 광복후 줄곧 있어 왔으나 행정동으로는 서동(書洞)에 속하였다. 1985년 12월 1일 서3동이 분동되면서 이 지역은 옛 지명을 찾아 금사동으로 발족하게 된 것이다.

《동래부지(1740)》산천(山川)조에는 오늘날의 수영강 상류를 사천이라 한다. 사천은 기장군 원적산(圓寂山)과 경계의 사배야현(沙背也峴)의 두 곳에서 발원하여 해운포(海運浦)로 유입된다고 기록되어 있다.

한편, 《동래부지》고적(古跡)조에는 동대(東臺)는 사천가에 있고 바위의 높이가 4~5장(丈) 가량되고 물이 굽이쳐 돌아 못을 이루어 깊이가 수장(數丈)이나 되며 물고기가 많아 낚시하기 좋다고 표현되어 있다. 이로 볼 때 금천, 사천, 회천 등의 마을 이름은 모두 수영강의 지역별 이름이거나 강의 흐름이나 풍치의 특색을 나타내는 주는 것이며 동대는 이 강가의 가장 좋은 경치 좋은 장소의 하나임을 엿볼 수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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