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금성동의 유래

금성동의 유래

금성동은 「동국여지승람」또는 「동래부지」에 의하면 「산정에 돌이 있어 높이 삼장(三丈)가량이며, 바위에 우물(井)이 있고 주위가 십여척이며, 깊이 7촌(寸)가량으로 물이 늘 차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늘 금빛이 있으므로 세상에 전해지기를 한 마리 금색고기가 오색구름을 열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으므로 금정산이라 일컫고...」에서 비롯된 금정산 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.

사적 제215호로 지정된 국내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곽인 금정산성이 있으며 본래 동래산성으로 불리던 우리 금정산성은 조선시대 부산지방의 피난 겸 항전 성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며, 5대 산성의 하나로 손꼽힙니다. 이 산성은 위치 및 규모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선조 숙종29년(1703년)부터 다시 쌓아 임란 후 일본의 재침입에 대비하여 순조 8년(1808) 동래부사 오한원이 현 규모로 중수하였으며, 1972년부터 1991년 사이에 동·서·남·북문을 복원하였고, 계속하여 성곽을 복원중입니다. 이 금정산 한가운데 분지를 이룬 곳이 유명한 우리 산성마을이며 법정동리명은 금성동으로 금정산성안에 조성되어 붙여진 이름인 듯 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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